‘Blank on Timing’ 과 너와 나의 연대기

홍경한 / 미술평론가

태도가 형식이 될 때 감춰진 것들은 비로소 실체를 획득한다. (각주1) 머리보다 가슴이 앞설 때 자연스럽게 공감은 생성된다. 작가 김원진의 작업 또한 궁극적으론 그곳을 향해 열려 있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선 그 어떤 불명확한 관념-그것이 사변적일지라도-도 형식미와 미적 태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경우 미적가치와 가시성이 공고해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20세기 초, 현대미술에서의 ‘소리’를 언급 (각주2) 하기 시작한 이후 소리는 세상에 ‘반응’하는 예술가의 또 다른 표현방식으로 자리해왔다. 3차원 공간 내에서 반사와 흡수, 진동을 일으키며 새로운 시각적 파동을 선사하는 소리는 조형을 뒷받침하는 특별한 수단이었다. 그것은 인식적 사물에서, 공간자체에서 중요한 조형요소가 되곤 했다.

19세기의 낭만파 이래 소리를 예술 축으로 하는 이들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기존 음계에 의해 구축된 음악을 해체하거나 탈 범주화하는 것이었고, 예술적 도그마(dogma)로부터 이탈한 학제 간, 장르 간 교종이라는 깊고 긴 터널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존 케이지(John Cage )처럼 20세기 중반 이후 자연발생적인 소리마저 하나의 예술재료로 삼는 과감한 시도 등은 청각적 환희와 대각선상에 놓인 그 어떤 것까지 건드리곤 했다. (각주3)

소리는 김원진의 근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바로 <Blank on Timing>(2021)이다. 집적과 정적인 상태에서의 소멸과 재생을 특징으로 하는 이전 작업과는 차이를 지닌 이 작품은 주기적인 모터 음(音)과 종횡하는 자동차 타이밍벨트(Timing Belt)의 움직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벨트에는 작가가 선택한 짧은 문자가 새겨져있고, 이 문자들은 존재하나 이내 사라지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시간의 공백을 관통한 시각이 소리에 묻혀 증발되었다가 다시 잇기를 거듭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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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on Timing, Timing Belt, Motor, Steel, Variable Installation, 2021

소리와 문자가 병합되어 구체적 지시성을 오히려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만듦으로써 시지각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Blank on Timing>은 기본적으로 기억과 망각에 관한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의 ‘자연붕괴설’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한 의미를 담은 문자의 순환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미학적으론 기억과 망각을 자유롭게 재조합하는 시뮬라시옹(Simulation)과 밀접하다. 특히 문자의 사용은 지식기억에 맞닿으며, 내용의 형성은 온전히 경험기억에 의존한다.(지식기억과 경험기억의 조합은 아래 언급할 <Melting strata project>도 같다.)

이에 대해 작가는 “시각적 언어로 실험하는 상실되는 기억들이 겪는 생성적 변이”라고 말한다. “시각적 언어로 실험하는 상실되는 기억들이 겪는 생성적 변이”는 현재를 읽기 위한 경험을 바탕으로 반복적 행위를 통한 다시 읽어보는 기억의 재생이다. 그의 발언처럼 “타인의 문장은 타인의 기억을 만나는 과정이며, (중략) 의미가 활자로 고정된 듯 보였던 기록물은 이를 읽어보는 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각주4)

기록된 기억이 변이되고 망각되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촉발된 김원진의 작업은 2020년 <W의 이야기>를 비롯해, 그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설치 작업 <Melting strata project>(2020)에서 이미 구현된 바 있다.

일례로 <W의 이야기>는 소설(책은 작가에게 물질적으로 혹은 개념적으로 가치 있는 소재이다.)에서 차용한 문장을 흘러내리듯 덧칠해 지워버린 장면(때문에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판독이 어렵다.)을 담은 캔버스 작업이고, <Melting strata-이별이야기(farewell story)>(2020)를 포함한 <Melting strata project>는 고전소설과 자신의 글에서 ‘발견’한 이별 관련 단어를 음절 형태의 밀랍으로 제작한 뒤 금속 책상 위에서 서서히 녹게끔 만든 가변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20년 수림미술상 수상작가전에 출품되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수림미술상 본선에 오른 4명의 작가 중 한명이었던 김원진 작가는 장인적 집요함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축적되고 집적되며 변이되거나 망각되는 기억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전이시켜 인간 삶에 관한 환기적 측면을 제시함으로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시간에 의해 소멸되고 불완전해지는 기억을 명징한 조형체계로 귀속시키는 방식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순간의 연속이 하나의 연대기로 기술하는 방법론을 포함하여 책과 테라핀, 석고, 철, 밀랍 등의 다양한 매재(媒材)를 통한 주체와 타자, 나를 둘러싼 세계와 세계 내 존재 간 상호성을 특유의 공간미에 접합시켜 인식의 영역으로 가시화한 부분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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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ting strata project, Wax, Paraffin, Heating Panel, Variable Installation, 2020

2. 김원진은 불완전하고 왜곡되는 과정 속의 기록을 기억에 비유하며 폐기된 기록물과 기록의 행위를 작업의 주요 재료로 삼는다. 기록물을 해체하고 남게 되는 흔적들을 수집한 채 집적을 반복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억이 역사가 되는 것만큼 역사가 기억을 생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기존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되었던 것을 망각시키고, 무의미했던 것으로 치부되어 망각된 것들을 조형으로 기억하는 해체론적 실험을 내보였다. 비록 불완전하고 불안정할지라도 이들 작업에선 (적어도)기억하는 기억과 기억하는 망각이 함께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선 <W의 이야기>나, <Melting strata project>, <The Land of the Glitches(오류지대)>(2019), <The depth of distance>(2017~2019), <The Chronicles of Today(오늘의 연대기)>(2016~2018) 등도 마찬가지이다. 하나같이 반복이 기억이나 망각과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한 문제를 다루며 기억과 대립되는 반복, 반복과 평평한 등선에 놓이는 망각의 지점을 언급한다.

이중 가변적인 작품 <The Land of the Glitches(오류지대)>는 기록물을 해체하고 남게 되는 흔적들을 수집하고 집적을 반복한 일련의 작업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작가는 <오류지대>에서 “집단의 기억이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재단되고, 그 안에서 개인의 기억도 이에 영향을 받지만, 이를 외부에서 지각하는 존재임을 공간에 표현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일종의 공간 메우기, 시간의 층위가 얽힌 임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 작업은 그의 말처럼 “쌓여진 선들을 분절하여 재구성함에 따라 지나간 순간을 새롭게 연대기화 한다.” (각주5) <The Chronicles of Today-drilling(오늘의 연대기)>(2016)처럼 말이다.

이전 작업과 <Blank on Timing>은 여러 지점에서 닮고도 다르다. 여타의 작업들이 어떤 물체에 에너지를 가했을 때 발생하는 결과(<Melting strata project>가 그 예이다.)를 직접적으로 다룬다면, 소리와 연계된 <Blank on Timing>은 기존 작업의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조금 더 공간과의 융합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때 사용되는 언어는 존재의 언어이면서 실체의 언어이자 직감의 언어에 가깝다. 또한 속도에 의해 제어되는 공백과 문자로 인해 읽히는 언어체계, 그리고 소리에 의한 연상체계는 그것을 바라보는 타자라는 존재 안에서 인식되거나 증발되기에 작가가 구축한 별도의 개념체계 내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소리와 문자에 관해 보다 덧붙이면, 사실 <Blank on Timing>에서 생생하게 전달되는 소리와 그 자체로는 아무 말 없는 침묵의 문자는 나란히 공존한다. 다만 공백은 시간의 속도, 망각의 속도에 의한 질량으로 상정할 수 있으며, 그 속도에 의한 시간의 질량을 문자의 무음(無音)이 이으면서 작품의 내러티브를 대리한다. 이때 소리는 해당 문자의 의미들을 확장하는 초음곡(超音曲)의 역할을 맡는다. 한편으론 문자가 소리에 묻히고, 묻힘으로써 기억과 망각의 시각성은 훨씬 더 무거워진다.

이를 관람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청각적 여운을 넘어선 시지각적 재구성에 의한 의식의 발견이다. 사실의 분실이다. 또한 공간까지 아우르는 변화무쌍함을 덧댄 주제의식의 공유까지 명료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타임벨트와 모터의 조합은 그 자체로 오브제이지만, 누군가 공간에 들어선 순간 시각화-지각화 되면서 일견 ‘관찰하는 시각’이자 ‘보이는 소리’, ‘물질과 공간을 연결하는 묵언과 다언’ 사이에 머물게 된다.

이는 달리 말해 청각으로부터의 은유가 시각의 결에 맞닿는 숙시(熟視)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업은 무엇보다 반응된 공간이 상황으로 치환된 것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 그건 기본적으로 청각의 영역이 ‘이미지’로 옮겨진 서술이며, 조형이라는 궁극을 향해 시공을 포박한 비물질적인 요소들이 물리적 환경과 어떻게 조우해 새롭게 의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으로도 해석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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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on Timing, Timing Belt, Motor, Steel, Variable Installation, 2021

3. 김원진의 작품은 마음 깊은 곳에 똬리 튼 내면의식과 외부와의 소통, 작가가 제시한 오브제로부터 빚어지는 주체와 타자 간 상호성의 문제를 기억과 망각, 집적과 해체, 분절과 조합을 통해 거론해 왔다. 더불어 <너와 나의 연대기>와 <Blank on Timing> 등의 근작에선 시공간을 넘나드는 탈영역화와 현존성,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라는 확장된 시도를 비롯해 시각을 관통하는 청각을 통한 이미지의 탈영역화를 선보였다.

이중 김원진의 <Blank on Timing>은 매체 확장 및 예술의 탈범주 측면에서 필자가 특히 관심을 가진 작업이다. 공간적-시각적인 것이 존재적 삶을 무대로 포획되고 전개되어 온 그의 역대 작업들과 무관하지 않은 맥락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대인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이슈를 자신만의 시각예술로 소환, 조형화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도 그럴 것이 <Blank on Timing>은 시공을 가르고 나누며 동시에 생성과 소멸-소환작용을 일으킨 채 끝없이 재생되며 드러난 시각과 감춰진 의미 사이에서 충돌하고 호흡하는, 그러면서도 소리와 시각이라는 전통적인 조형요소를 적절하게 소화함으로써(따라서 키넥티(kinetic art) 요소도 있다.) 보이지 않는 파동을 일으키는 상황을 연출한다.

반면 이전의 작업은 정적이다. 그럼에도 공간성과 더불어 자기 고백적 공소(空所)의 미(美), 시간성, 공간성은 지금도 인상적이다. <너와 나의 연대기>에서 공소의 미는 확실히 넓게 파생되고 동시에 각자 고유의 시간성을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으로 파편화되지만, 실제의 공간과 기호의 공간으로 구분되거나 두 공간 모두 시간으로 측정된다는 것이야말로 눈에 띄는 지점이다.

<Blank on Timing>을 포함한 김원진의 작품들은 이제 소리와 미술을 연계한 ‘체계적이나 즉흥적이고 임시적 공간’을 통해 공감각적 상황을 연출하고, 시각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일상 속 예술의 심리성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어쩌면 관람객들의 일반적 인지와 사고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작업들일 수 있음에도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 중에서도 <Blank on Timing>은 나를 중심으로 한 기억과 망각의 복제-재생 장치를 통해 시공의 변주와 맞물려 끊임없이 수다스런 소리-잡담-소음 속에선 결코 들리지 않을 침묵의 언어를 애써 찾아내려는 것만큼이나 의미적인 조형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와 문자는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시각요소이지만 과거 작업 대비 김원진 만의 문법이 점차 명징해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물론 설치작업이란 게 비록 누구에게나 인식 가능할 만큼 이해가 원활한 것도 아니고, 취합의 구조 역시 설명 없인 이치를 따지기도 어렵다. 현재의 작업 보다 규모의 확장도 요구된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공간 속에서 병렬-중첩되면서 기존 시청각적 체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Blank on Timing>은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근래 김원진의 작업은 과거 대비 훨씬 넓어진 보폭을 증명한다. 이번 금호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포함하여 이후의 작업 또한 자신만의 미학적 가치관을 한층 더 새롭게 구조화하는 방향에서 설정될 수 있음을 예상하게 한다. 이는 시간, 공간, 관계성을 함유한 여러 종류의 공간을 지나가면서 경험하는 삶, 그 중심에서 건져 올린 여러 것들을 텍스트화하며 일련의 표상으로 경계를 허물고 교차시키며 탈영토화, 위반, 초월, 탈주 등의 개념을 공존, 혼종과 같은 또 다른 개념으로 소환하거나 직조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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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ronicle between You and Me 너와 나의 연대기

Ash of Reply from Every life, Ink, Beeswax, Paraffin, Steel, Heating Bulb, Variable Installation, 2021

4. 한편 김원진은 2021 금호창작스튜디오 16기 입주작가전 <하나의 점 모든 장소>(8.27.~8.18. 금호미술관)에 다수가 기억하는 오늘을 녹여내어 하나의 연대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 <너와 나의 연대기>(2021)를 선보였다. 정사각형의 석고 및 밀랍 덩어리가 책상 위에 수북이 얹혔고 벽에는 <W의 이야기>와 <The Land of the Glitches(오류지대)>, <지층의 연대기>(2017), <A Chronicle of the Moment(순간의 연대기)>(2017) 등에서 제시했던 형식의 평면 작품이 걸렸다.

<너와 나의 연대기>는 타인의 삶에 드리운 기억을 밑동으로 하지만, 미화의 방편으로 삼지는 않는다. 150여개가 넘는 이야기들이 각각의 입방체에 압축되어 있음에도 미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단순히 기억에 따라 서술된 연보(年譜)와는 다르다. 적어도 이 작업은 앞선 연대기 작업들에 배어 있는 개념을 재소환하거나 <Melting strata project>의 계보를 따르면서도 기억의 단계를 회상의 단계로, 회상을 서술화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전환기를 보여준다는 사실에서 변별점이 있다.

연대기를 드러내는 과정은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이고 개별적이면서 타인과 공유되는 경험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분히 동시대적이다. 타자의 개입과 개방성(주체의 양도 현상), 텍스트와 이미지,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작은 공존적 집합이 서로 깊은 관계, 즉 혼성화를 맺고 통합이 아닌 다름을 잇는 양태를 내보인다는 것도 동시대성을 뒷받침 한다.

이 작업의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작가는 주변인과 주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190인에게 자신의 하루의 기록을 서신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중 156인에게서 회신이 왔다. 작가는 이 편지들을 하나씩 읽은 후 태워 남은 재에다 석고, 밀랍을 섞은 재료로 156개의 조각을 만들었다. 이어 전시장에 하얀 조각들이 쌓인 작업 한 점과, 156개의 조각을 올린 설치 작업을 두 개의 테이블에 늘어놨다. 하얀 조각들은 회신 되지 못한 유실물이다. (각주6)

이 조각들은 156인의 하루가 녹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각자의 삶에 있어 기억에 남는 하루가 그렇게 기록되고 사라졌다. 어떤 것은 여전히 기억됐고, 또 다른 것은 망각이라는 심연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실제 이 조각들은 책상 밑 미열에 의해 서서히 녹아 하나의 덩어리가 되기도 했고 몇몇은 용케도 미열을 피해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었다. (각주7)

결국 <너와 나의 연대기>는 스스로 선택한 가상의 세계, 리얼리티(reality)가 바탕이 된 실제 현실이 덧입혀지는 세계에서 태도와 형식, 공간과 시간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예술형식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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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velopes, Envelopes of Reply from Every life, Variable Height, 2021

각주

1) 만약 그가 발견하고 선택한 하나의 경험과 기억이 그저 그렇게 과거에 놓이거나 심적 상태 어딘가에 머물고 만다면 시각성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2)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는 미래주의 선언문 ≪소음의 미술(The Art of Noise)≫ (1913) 을 통해 ‘소리’를 미술의 일부로 수용한다.

3) 가시적이지 않은 세계를 시각화한다는 매력은 물론, 작화적 관점에서의 기호성을 나타내는데도 소리는 꽤 유효하다. 따라서 많은 작가들이 개념미술의 일부로 또는 미니멀리즘, 사운드아트, 다원주의의 한 경향으로 소리를 시각예술로 편입시켜 왔다.

4,5) 김원진 작가노트 중.

6) 게으른 나머지 미처 편지를 부치지 못한 필자도 그 유실물에 포함되었다. 작업의 일부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있다.

7) 김원진의 이 작품에는 현전(現前), 즉 굳이 빗대어 말하자면 플라톤의 눈앞에 나타난 진리인식과 존재란 타자로부터 획득 가능한 실체의 다른 어미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돌아오는 것과 유실되는 것, 녹아 없어지는 것과 살아남는 우연과 불확정성이 개입함으로써 <너와 나의 연대기>의 미적 문맥은 완성된다.